Link [리뷰] 김수영 시 <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를 읽고
스터디나/역사의 숨결

[리뷰] 김수영 시 <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를 읽고

차설희 2024. 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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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교과서에서 배웠던 김수영 시인의 시,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를 수년이 지난 오늘 다시 접하게 되었다.


박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단 박제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김수영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의 포로수용소의 제14야전 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펀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 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펀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뭇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 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 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 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 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 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이십 원 때문에 십 원 때문에 일 원 때문에
우습지 않느냐 일 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난 얼마큼 작으냐
정말 얼마큼 작으냐...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나는 이 작품을 학창시절 교과서로 처음 접했다. 그 당시, 작품에 쓰인 단어 하나하나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 시의 전체적인 분위기나 주제, 그리고 작가의 상황이나 시대상을 찬찬히 배우고 외우던 때의 나와, 어렴풋한 그 때의 기억을 뒤로한채 한줄한줄을 음미하며 내가 겪은 그동안의 경험이나 상황에 손쉽게 이입이 가능해져버린 지금의 나는 이만큼 다르구나 생각한다.

정신적 성숙을 통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인걸까.


요즘 조금 놀라고 있는 게, 아니 언제부터 세상에 자아 성찰의 기회가 이렇게 넘쳐났던 건가 싶은 중


메타인지 이제 그만 발동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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