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The Great Game
- 강대국들이 패권을 다툼. 19세기는 세계열강들의 게임판이다.
- 영국이 대부분의, 다수의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고 러시아는 영국 때문에 바다로 나가기가 힘들었다. (영국이랑 러시아는 사이가 매우 안 좋았음)
- 그래서 러시아는 시베리아 철도를 이용하여 세력권 확대를 꾀함.
- 시베리아 철도는 약 9,000km로 지구 둘레의 약 1/4
- 러시아는 겨울이면 바다가 얼어서 물자와 군사 이동이 힘들었음. 부동항이 필요.
- 오늘 날 러시아의 영토가 가장 큰 것은 부동항을 얻기 위한 러시아의 오랜 정책과 의지 덕이라고
* 부동항(不凍港 ) : Ice-free port, 겨울에도 바다가 얼지 않아 1년 내내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항구
- 삼국 간섭
- 청일 전쟁에서 일본이 이겨 랴오둥반도(뤼순항; 부동항)를 확보했다는 소식을 들은 러시아.
- 러시아는 독일, 프랑스를 설득. 일본을 압박하여 랴오둥반도를 청에 반환하게 함
- 청일전쟁 이후 시모노세키 조약에 의해 청은 일본에 배상금 2억 냥을 줬어야 했는데 청은 배상금을 낼 돈이 없었음
- 이를 러시아가 빌려주고 그 대가로 부동항인 랴오둥반도를 요구. (+시베리아 철도가 만주를 지나갈 수 있게 허락도 받음.)
- 그렇게 러시아는 1898년 랴도둥반도(요동반도, 뤼순항 ; 부동항)를, 독일은 칭다오, 프랑스는 광저우를 차지하게 됨
- 칭다오에 맥주가 유명하고 맛있는 이유가, 맥주에 진심이었던 독일인들이 칭다오에 맥주 공장을 세우고 '독일 홉'을 공수해 와서 독일 기술로 맥주를 생산하였기 때문.
- 홉은 맥주의 주된 4 요소(물, 홉, 맥아, 효소) 중 하나로 향을 내는 역할을 함. 독일에서 가장 많은 양이 생산됨.
- 러일 전쟁
- 화가 난 일본
- 일본은 뤼순을 되찾기 위해 국가 예산의 40%를 투입하여 러일 전쟁을 아주 열심히 준비함.
- 뤼순은 러시아 해군의 기지이자 태평양 진출의 거점이었고 부동항이자 시베리아 철도의 거점이었음.
- 청일 전쟁 때 일본은 하루만에 뤼순항을 함락시켰었는데 (기습 공격으로!) 이 전법을 이번에도 이용하기로 함
- 그러나 러시아는 뤼순에 콘크리트를 부어 철벽 같은 요새를 만들고 나오지를 않음
- 뤼순항은 안으로 넓은 만과 매우 좁은 출입구를 가지고 있음 : 천혜의 요새라 함

- 뤼순항 뒤쪽(위 그림의 상단부) 에 203 고지가 있는데 요새화를 시키고 올라오는 길목을 전부 벌목하여 감시함
- 일본은 시베리아 철도가 완공되기 전에 전쟁을 끝내야 했기 때문에 인천으로 들어온 육군을 뤼순항으로 보냄 (203고지를 넘어 들어오게)
- 일본 '노기 마레스케'의 지시로 청일전쟁의 작전과 동일하게 무작정 돌격을 감행했고 이로 인해 일본군 6만 명이 희생 됨
- 참고로 일본 육군만으로는 쉽지 않았고 203 고지 밑에 해안포를 설치해서 점령이 가능했음
- 러일전쟁 발발 후 약 1년 뒤인 1905년 1월에 일본이 뤼순항을 함락시킴
- 러시아 입장에서는 완전한 패배가 아니라 멀리 보고 잠시 후퇴한 거라고. 최종 승리는 러시아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 보급선이 길어지면 일본이 오래 버티지 못하니까 + 더 추운 쪽으로 올라가는..
- 노기 마레스케는 전쟁 영웅이 되었으나 죄책감으로 인해 일왕 사망 후 바로 부인과 함께 자결함
- 피의 일요일
- 러시아의 동쪽 출입구 : 블라디보스토크
- 러시아의 서쪽 출입구 :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 제2의 도시, 당시 제정 러시아의 수도. 전쟁 지휘부가 있던 곳)
- 때는 러일전쟁이 한창이던 때
- 전쟁으로 인한 국민들의 세금 부담이 컸음
- 상트페테르부르크 최대의 금속 기계 공장에서 노동자들을 부당해고 시키는 사건이 벌어지고 파업에 들어감
- 과도한 토지 상황금, 물가 폭등, 저임금으로 생활고에 시달리는 러시아 국민
- 일본은 러시아 내부 균열을 악화시키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동원하여 러시아 혁명 세력을 배후에서 지원함
- 1905년 1월 22일 러시아 국민들은 황제의 궁으로 향함 : 구세주인 황제(차르)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함
- 무장한 군인들이 행렬을 막지 못하자 자국민 천여 명을 그 자리에서 사살함 : 피의 일요일
- 국민들은 더 이상 황제를 숭배하지 않기로 함.
- 발트함대 VS 일본 연합함대
- 러시아의 자랑 발트함대!
- 발트해(러시아의 서쪽 끝)에서 발트함대를 출동시켜서 뤼순항(러시아의 동쪽 거의 끝)까지 가야 한다!
- 그러나 수에즈 운하를 거치지 않고 아프리카 대륙 밑으로 크게 돌아서 감. 왜냐면? 영국이 막아서..
- 발트함대는 1904년 10월에 출항하여 약 200일 후 대한 해협에 도착함 (* 대한해협: 한국의 동남부와 일본 규슈 사이에 있는 해협)
- 발트 함대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다시 전열을 재 정비해서 갈 생각이었음

- 일본은 그동안 우리나라 진해에서 마음대로 훈련을 함.
- '취도'라는 섬을 발트 함대로 상정하고 섬을 향해 사격 훈련을 함. 현재 98% 소실되어 2% 남음 ('취도 기념탑' 거제 시민 단체에서 철거 운동을 하였으나 현재는 기념비 주위에 돌탑을 쌓아 평화의 탑으로 정비함)
- 일본군은 훈련대로 재빨리 발트 함대의 진출로를 가로막고 선두에 있던 함대부터 집중 포격을 가함.
- 약 40시간 만에 일본의 승리로 끝남
>> 이를 '쓰시마 해전'이라 하고 일본 역사에서 중요하게 다룬다고 함
- 포츠머스 조약
- 일본은 더 이상 전쟁을 지속할 수 없는 상태
- 러시아는, 아직 승자도 패자도 없으니 배상금을 줄 수 없다. 더 진행하면 우리가 이긴다는 입장
- 러시아와 일본은 조항에 대한 서로의 입장 차이로 1개월이 걸렸으나 결국 조약을 맺음.
한국에 있어서의 일본의 우월권을 승인함
- 이 외에도 일본은, 한국을 마음대로 하기 위해 영국, 미국과도 조약을 맺어 한국을 고립시킨다.
- 2차 영일 조약
대한제국에 대한 일본의 권리와
인도에 대한 영국의 권리에 상호 동의
- 가쓰라-태프트 밀약 (일본, 미국)
대한제국에 대한 일본의 지배와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지배 상호 승인
- 독도
- 일본은 동해에서 러시아 함대를 감시하겠다는 명분으로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칭하며 시마네현으로 강제 편입시킴
- 한반도 식민지화의 첫출발 : 독도의 강탈
- ‘독도는 우리땅’ 가사에 보면, ‘러일전쟁 직후에 임자없는 섬이라고 억지로 우기면 정말 곤란해’라는 부분이 있다.
- 을사늑약
1905년 을사늑약 : 대한 제국의 외교권 박탈
일본국 정부의 중개를 거치지 않고서는 국제적 성질을 가진 어떤 조약이나 약속도 맺지 않는다.
- 이로 인해 자주 외교가 불가능하자 각국 공사관들이 철수를 하게 됨.
- 대한제국은 국제적으로 고립됨
- 을사늑약에 찬성했던 사람들 : 이완용 이지용 이근택 권중현 박제순
- 헤이그 특사 파견
- 고종은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특별 사절단을 파견한다.
-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호소하고 대한제국이 주권 국가임을 알리는 임무를 가지고 비밀리에 파견됨
- '헤이그 특사' : 이준, 이상설, 이위종, 헐버트
- 그러나 일본의 방해로 실패를 했고 그들은 일본의 감시를 받으며 죽을 때까지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함
- 일본은 헤이그 특사에 대한 책임을 물어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킴. 대한제국 군대도 해산시킴.
- 1909년 기유각서 : 대한제국의 사법권 박탈
- 1910년 한일약정각서 : 대한제국의 경찰권 박탈
- 1910년 한일 강제 병합 조약 : 대한제국의 국권 박탈
- 러일전쟁의 결과
- 대한제국은 13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됨
- 일본 제국주의 시작과 한반도 식민지화
- 우리는 나라를 잃어버리는 비극적인 운명에 놓이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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